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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지 증후군에 걸린 사람들

10.14.2009, 미분류, by .



목적지 증후군에 걸린 사람들


[창업칼럼]역사 속에서 배우는 승자의 언어



                                                                                     정보철 창업칼럼니스트 | 10/12 15:32 | 조회









 


한 여름날 양반이 하인을 데리고 잔칫집을 향해 집을 나섰다. 고개를 대여섯개 넘는 먼 길이다. 가만있어도 땀이 나오는데 걸어가자니 미칠 지경이다. 연신 부채질을 하면서 걷는다. 한참을 가니 개울이 보였다. 하인이 반색하며 양반을 꼬드겼다. 그러나 양반은 요지부동이었다.

“그럼 쇤네만 물에 들어가겠습니다.”

하인은 옷을 벗어던지고 시원한 물에 몸을 담갔다. 물장구를 치면서 연신 소리를 내질렀다.

“아이고, 시원해. 아이고, 시원해.”

태양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기세를 보니 더위는 점점 기승을 부릴 모양이다. 양반은 그런데도 땀을 삐죽삐죽 흘리고만 있었다.

개울물에 담근다고 잔치가 무산되는 것은 아니다. 혹 그 때문에 잔칫집에 늦게 도착 한다고 해서 문제될 것도 없다. 물장구치며 떠난 시원한 여정으로 족하다.

땀을 뻘뻘 흘리는 그를 보고 답답한 양반이라고 생각해 봤을 것이다. 그러나 그 양반이 우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은 해보지는 않았는가. 그를 나무라기 전에 여행을 떠나보자. 단체여행에서 가끔 벌어지는 일이다.

“사진과 똑같네. 더 이상 볼 것이 없네. 이제 가세나.”

목적지에 도달하자마자 다음 행보를 재촉한다. 다음 행선지에서도 마찬가지다. 목적지에 왔다 싶었는데 또다시 다음으로 이어진다. 목적지는 이들에게 정복해야 할 대상이지 즐길 대상은 아니다. 서둘러 가고 온다. 무엇이 그리 바쁜지 주위를 둘러볼 여유가 없다.

여정을 시작할 때는 분명 목적이 있었다. 어디어디를 둘러보고 그 아름다움을 만끽하겠다는 설렘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여행을 떠나자마자 목적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오직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에 의미를 둔다. 이른바 목적지 증후군(Destination Syndrome)에 걸린 사람들이다. 세상에는 목적지 증후군에 걸린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목적지 증후군은 병이다. 그것도 고치기 힘든 중병이다.

목적지 증후군이 왜 문제인가. 크고 작은 문제가 있다. 하나는 목적을 위한 수단이건만 수단이 목적이 돼버리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여행을 떠나는 것은 아름다움을 만끽하기 위해서다. 여행은 그 수단이다. 그러나 주변에서 여행을 위한 여행을 하는 경우를 발견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여정에서 보고 느끼고 들을 수 있는 갖가지 아름다움, 삶을 풍부하게 하는 다양한 순간들에 고개를 획 돌리고 오직 목적지를 향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그들에게 삶은 목적지를 위한 하나의 수단이다. 목적지라는 부분이 삶이라는 전체를 뒤덮는 꼴사나운 모양이다.

일상생활에서 탈출구로 여기는 가벼운 여행부터 태어나서 죽음으로 이어지는 삶의 여행, 성공과 실패의 여행, 남녀가 서로를 찾아가는 사랑여행, 비즈니스여행 등 우리가 살아가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모든 여행에 해당한다.

더 큰 문제는 목적지 증후군에 걸린 사람들은 결코 목적지에 도달 할 수 없다는데 있다. 목적지를 찾아 헤매는 그들은 사막에서 방향을 잃은 나그네이다. 신기루를 좇다가 지쳐 쓰러지는 가여운 족속이다. 설혹 도달한다 해도 잘못된 곳에 당도하기 일쑤다. 프리츠 하버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1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과 대치중인 프랑스군이 일거에 죽음을 당했다. 총격전이 오고간 적도 없는데 왜 떼죽음을 당한 것일까.

바로 독가스가 원인이었다. 독일군이 흘려보낸 독가스에 프랑스군이 치명적인 중독을 당했다. 이에 영국과 프랑스군도 독가스를 개발, 1차 세계대전을 가스전으로 몰고 갔다. 독가스로 희생된 사망자수는 10만여명, 후유증을 앓은 사람만도 100만명을 넘어섰다. 독가스전을 주도한 사람은 독일의 화학자 프리츠 하버였다. 하버는 평소에 이런 말을 했다.

“전쟁기술의 역사는 1915년 4월22일을 기억할 것이다. 이날은 처음으로 가스무기를 사용하여 확실한 군사적 승리를 거둔 날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를 ‘목적지에 몰두하다 방향을 잃어버린 영혼 없는 과학자’로 기억할 것이다. 독가스 연구를 막으려다 실패한 그의 부인은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그가 개발한 독가스 사이클론B는 제2차 세계대전 내내 나치의 강제수용소에서 유태인을 죽이는데 사용되었다. 그 역시 유태인이라는 게 비극적인 아이러니다.

주변을 둘러봐도 하버 같은 부류의 인간을 심심치 않게 보게 된다. 그들은 누구인가. 아마도 ‘개같이 벌어서 정승처럼 쓴다’는 속담과 연관된 사람들일 것이다.

이 속담은 무지하다. 개같이 벌면 개같이 쓰는 것이고, 정승처럼 벌면 정승처럼 살기 마련이다. 정승처럼 살고 싶으면 정승처럼 벌고 쓰면 되는 것이다. 개같이 벌고 나서 정승처럼 산다는 것은 말장난일 뿐이다. 오늘 어떤 식으로 돈을 벌더라도 내일 괜찮다는 면죄부를 주기위한 천박한 말장난이다. 돈을 번다는 목적지는 분명한데 어떻게 살아야하는 방향성이 전혀 없는 속담이다.

방향을 명확하게 아는 것이 중요하다. 어떤 식으로 살아가도 목적지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매일 매순간 목적지에 도달하는 사람에게 목적지는 새삼스러운 게 아니다. 방향성을 갖춘 사람의 삶에 대한 태도는 외형적인 그 무엇을 추구하는데 있지 않다. 그들의 삶에 대한 자세는 누리는 것이다. 이 순간을 철저하게 느끼는 것이다. 이들은 오늘을 산다.

오늘을 사는 것은 느낌으로 사는 것이다. 생각이 아니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다. 섬세한 감각으로 전적으로 사는 것이다. 이들의 내부에서 에너지가 샘솟듯이 흘러나온다. 에너지의 단절이 있을 수 없다.

에너지는 두가지 측면이 있다. 하나는 목표 지향적 에너지다. 지금 여기가 아닌 나중 저기를 목표로 두는 에너지이다. 지금 이순간은 목적지로 가는 단지 하나의 과정이다. 어떻게 해서든 목적지에 도달할 때까지만 에너지가 움직인다.

또 다른 에너지는 방향성 에너지이다. 이 순간을 충실하게 살아가는 자에게 나오는 에너지다. 순간에서 순간으로 변하는 삶에 맞춰 오늘 이 순간을 살아가는 사람에게 삶은 그자체로 충만하다. 지금 이 순간을 충만하게 보내다보면 분명 방향이 열린다. 순간은 계속 이어지고 에너지도 덩달아 내부에서 솟아오른다. 역설적인 것은 이 방향성 에너지가 있어야 목적지에 정확히 도달할 수 있다는 점이다.

목적지와 방향의 차이는 생각보다 훨씬 크다. 추구하는 시점부터 다르다. 목적지는 다음을 기약하는 반면 방향은 지금을 요구한다. 오늘과 내일, 지금과 나중, 현재와 미래의 차이만큼 목적지와 방향의 차이는 멀고도 멀다.

역사를 보더라도 승자들의 위대한 업적은 내일에 있었던 게 아니다. 오늘 하루하루를 충실하게 보낸 사람들에게 열려 있었다. 이 순간을 충실하게 살면 방향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그런 순간이 쌓이면서 성공의 길이 열리는 법이다.

초한(楚漢) 항쟁의 두 주역 항우와 유방의 이야기는 중국 역사에서 가장 흥미진진하고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젊은 시절 이들은 시차를 두고 진시황의 나들이를 구경했다. 호화로운 진시황 행렬을 보다가 황우가 큰소리쳤다.

“내가 반드시 저자를 치고 그 자리에 앉으리라.”

놀란 숙부가 서둘러 항우의 입을 막을 수밖에 없었다. 반면 유방의 반응은 전혀 달랐다.

“사내로 태어나서라면 저 정도는 되어야지.”

진나라에게 멸망한 초나라의 명문가 자제인 항우, 강소성 농민 출신인 유방의 차이인가. 두사람의 대응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출신성분으로 이들의 발언을 설명할 수는 있지만 짚고 넘어갈 것은 최후의 승자는 유방이라는 것이다. 이것도 출신성분으로 얘기할 수 있을까.

결국 본질적인 것은 출신이 아니라는 점이다. 항우는 진시황의 타도라는 구체적인 목적지를 정했고 유방은 천하를 잡아보겠다는 큰 틀 아래 방향성을 세웠다. 항우는 내일을 향해 질주했고 유방은 오늘을 충실하게 살았다. 이러한 태도의 차이가 승패를 가른 것이다. 방향은 승자의 언어요, 목적지는 패자의 언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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